
우리 딸 심쿵이는 만 4세. 아직 어린이집에서 있었던 일을 설명해주지 않는다. (현재 언어 수준 만 2세 정도로 짐작)
밥 먹었어? 물어도 대답이 없거나 가끔씩 "밥 먹었어."라고 따라 하듯 대답해 주는 정도.
재밌었어?라고 물어도 대부분 대답이 없지만 정말 즐거웠던 날에는 "재밌었어!"라고 답해준다.
네/아니오 대답도 어려워하는 터라, 뭘 먹었냐던가 뭘 했냐던가 하는 질문은 다음 수준으로 넘어가야 가능한 일 같다.
그러던 어느 날, 발달 센터 선생님이 우려되는 목소리로 내게 말씀하셨다.
"심쿵이가 자꾸 '혼난다', '이 놈 할 거야'라는 반향어를 반복해요. '자리에 앉아 있어야 돼', '기다릴 거야', '움직이지 않아'라는 말도 함께요.
오늘은 속상했어? 하고 물으니 '속상했어', 힘들었어? 하고 물으니 '힘들었어'라고 대답하며 엉엉 울어버렸어요...
혹시 어디서 이런 말을 너무 많이 듣거나 강하게 지적받아 스트레스가 되고 있지는 않나 걱정되네요."
깜짝 놀랐다.
첫째, 우리 딸은 스스로 저런 문장을 상상해서 만들어내지 못하기 때문에 분명 어디선가 들었다는 말이고,
둘째, 긴 문장을 외우기까지 했다는 건 한두 번 들은 게 아니라 꽤나 여러 번 반복해 들어왔다는 뜻이다.
셋째, 집에서는 저런 말을 쓰지 않는다. 우린 아이를 아이 조부모님께 맡기지도 않기 때문에 센터 혹은 어린이집에서 들었다는 뜻이라... 더욱 걱정이 되었다.
(심쿵이가 보는 미디어에서도 혼난다거나, 이 놈 한다는 표현은 나오지 않음)
자리에 앉아 있어야 한다거나 기다려야 한다는 말은 당연히 기관에서 쓸 수 있는 말이다.
움직이지 말라는 것도 체육 활동이나 특정 활동 중에 나올 수도 있는 말이다.
하지만 '혼난다', '이 놈 할 거야'는 보육 기관에서 쓰기에 적합하지 않은 말이라 생각되고, 아이가 서럽게 엉엉 울면서 속상했음을 표현했다는 것은 누군가 아이에게 꽤 강한 어조로 말한 것 같았다. 게다가 언어 발달 늦는 아이가 달달 외워 반향어로 읊을 정도라는 건 반복해서 듣고 있다는 얘기다.
순간 속상한 마음에 기관을 바꿔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침착하게 생각해 보니 아이의 말 만으로 정황을 제대로 파악하기는 섣부르니 조금 더 지켜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날, 심쿵이 돌봐주시는 분들께 확인해 본 결과, 센터에서도, 어린이집에서도, 어린이집 특별활동 중에도 저런 표현을 썼다는 분은 나오지 않았다.
마음은 찝찝하지만, 저런 말을 한 분이 계신다면 '아, 심쿵이가 말도 못 하는 줄 알았는데, 집에 가서 자기가 어떤 말을 들었는지 전달할 정도의 수준은 되는구나. 조심해야겠다.'라고 생각하셨을 거다.
아이 언어 발달이 좋아져 누가 어떤 말을 했는지, 얼마나 자주 했는지, 그래서 어떤 감정이 들었는지 우리에게 말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아이가 반향어로라도 자기가 어떤 말을 듣고 있는지 우리에게 알려준 사실에, '아, 반향어지만 도움이 될 때도 있구나! 아이가 어떤 말을 많이 듣고 있는지, 어떤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어서 참 다행이다.' 싶었다.
반향어가 도움이 되기도 한다니, 웃음이 나면서 씁쓸한 마음이었다.
심쿵아, 앞으로 어딘가에서 슬픈 일, 무서운 일, 힘든 일이 생기면 엄마아빠에게 이런 식으로라도 알려줘!
좋은 일, 기쁜 일도 공유할 수 있는 날이 얼른 오면 좋겠다. 기다릴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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